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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981.11.22 가정공동체(Familiaris Consortio) (0)
작성자 : 복음화위원회
등록일 : 2008.03.01 10:45
조회수 :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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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현대 세계에서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을 설명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이다. 이 문헌은 가정이 자신의 정체, 풍요한 내적 자원,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신뢰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설명하면서, 신앙 안에서 혼인과 가정의 위대한 가치와 의미를 ‘기쁜 소식’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한다.

현대 세계의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에 관하여

서론

제1부 현대 가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제2부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제3부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I. 인간 공동체의 형성
II. 생명에의 봉사
III. 사회발전에의 참여
IV. 교회의 삶과 사명에 참여

제4부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 단계, 구조, 행동인, 상황
I. 가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의 단계
II. 가정사목의 구조
III. 가정사목의 행동인
Ⅳ. 어려운 경우의 가정사목

결론


서 론

가정에 봉사하는 교회

1.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는 현대세계에서, 다른 어느 제도만큼이나, 아마 그 이상으로, 사회와 문화에 영향을 끼친 깊이있고 빠른 각종 변화의 여파를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가족제도의 기초를 이루는 제 가치를 충실히 지키면서 많은 가정은 이 상황을 견디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가정들은 자신의 역할에 대하여 확신을 잃고 혼란을 느끼거나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의 궁극적 의미와 가치에 대하여 의심을 품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무지 상태에 있습니다. 심지어는 각종 불의한 상황 때문에 기본 권리의 실현을 방해받고 있는 가정들도 있습니다.
교회는 혼인과 가정이 하나의 소중한 가치임을 알고 있기에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이미 인식하면서 충실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그 진리를 확신하지 못하여 불안하게 찾아헤매는 사람들, 가정생활을 자유로이 할 수 없도록 부당하게 방해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하고자 합니다. 첫째 부류의 사람들을 북돋아주고 둘째 부류의 사람들을 비추어주며 셋째 부류의 사람들을 도와준다면,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목표에 관하여 의문을 품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게 될 것입니다.1)

선행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1980년도 세계주교대의원회의

2. 1980년 9월 26일에서 10월 25일 사이에 로마에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가정에 대한 교회의 깊은 관심의 징표를 보여주었습니다. 이 회의는 두 번의 선행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자연스러운 연속이었습니다.2) 사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성장 과정에 있는 인간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점진적 교육과 교리교육을 통해서 그를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완전한 성숙에로 끌어올리도록 부름받은 첫번째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최근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또한 사제직무와 현대세계에서의 정의를 다룬 선행 세계주교대의원회의와 어떤 의미에서 논리적 연결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정은 교육하는 공동체로서 인간들을 도와서 자신의 소명을 식별하여 더욱 완전한 정의를 추구함에 있어서 책임을 지게끔 하고, 정의와 사랑으로 가득 찬 인간 상호관계를 맺는 방법을 처음부터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회의가 끝나면서, 주교들은 집중적 토의 과정을 통해서 무르익은, 자신들의 명상의 결실을 모은 장문의 건의안을 본인에게 제시하였는 바,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본인이 전인류를 향하여 가정을 위한 교회의 활기있는 관심의 대변자가 되는 동시에, 인간의 삶과 교회생활의 이 기본적 영역에 있어서 사목활동의 활성화를 위한 적절한 지침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이 교황 권고로써 그 사명을 완수하고 이 특수 문제에 있어서 본인에게 부여된 사도적 임무를 실현하려는 이 기회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모든 주교들이 건의안을 통해서 성취한 가르침과 체험에 관한 값진 기여에 대하여 감사하는 바이고, 그 건의안을 교황청 가정위원회에 전달하며 그 풍요로운 내용의 모든 측면을 발굴하기 위한 연구를 지시하는 바입니다.

혼인과 가정의 소중한 가치

3. 교회는 혼인과 가정의 위대한 가치와 깊은 의미에 관한 모든 진리를 이해하게 하는 신앙의 조명을 받으면서, 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특히 혼인의 소명을 받고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기혼 부부와 온 세상의 부모들에게 복음, 즉 “기쁜 소식”을 선포할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심각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인간이 당연히 혼인과 가정에 두고 있는 희망은 오직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채워질 수 있다고 교회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창조 행위 안에서3) 하느님께서 의도하셨던 혼인과 가정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도록4) 내재적으로 질서지어졌고 죄의 상처를 치유받으며5) “원상 상태”6)로, 즉 하느님의 계획에 대한 완전한 이해와 실현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합니다.
역사의 이 시점에서 가정은 그것을 파괴하거나 또는 어떤 모양으로 변태시키려는 다양한 세력의 표적이 되어있으며, 교회는 사회와 교회의 안녕이 바로 건전한 가정과 밀접히 직결되어있음을7) 의식하기 때문에,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을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명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또한 혼인과 가정의 활력과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발전을 확실하게 하고 사회와 하느님 백성의 쇄신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제1부 현대 가정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상황을 이해할 필요성

4.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특수한 사회적 문화적 상황하에서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는 남녀와 관련된 까닭에, 교회가 자신의 봉사 임무를 완수하자면8) 오늘날 혼인과 가정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이해는 복음화활동의 필수적 요구 조건입니다. 현대세계의 조건 안에 놓인 가정들이 그들에 관한 하느님의 계획을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듯이, 교회는 우리 시대의 가정에 예수 그리스도의 불변하고 항상 새로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성령의 부르심과 요구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서 울려퍼지기 때문에, 교회는 또한 젊은이들과 기혼 부부와 모든 부모들의 처지, 의문, 근심, 희망에서 도움을 받으며, 혼인과 가정의 끝없는 신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됩니다.9)
여기에다 물론 오늘날에는 아주 중대한 깊은 사색이 첨가되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매우 그럴 듯하지만 다양한 정도로 진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흐리게 하는 발상과 해결책들이, 혼인과 가정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의 해결을 온 정력을 기울여찾고 있는 현대의 남녀에게 제공되는 일은 드물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흔히 강력하고 거대한 대중홍보 조직체의 지지를 받으며 객관적 판단의 자유와 능력을 교묘하게 약화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인간에 대한 이 위험을 감지하고 진리를 위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복음적 식별력을 가지고 있는 교회는 그들과 합세하여 진리와 모든 남녀의 자유와 존엄을 위하여 봉사하고자 합니다.

복음적 식별

5. 교회가 행사하는 식별이란 혼인과 가정에 대한 진리 전체와 온전한 존엄성이 보존되고 실현되도록 하나의 정향(定向)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식별은 성령께서 모든 신자에게 주시는 선물인10) 신앙심을 통해서11) 이루어지기 때문에, 다양한 은혜와 특은에 따른 교회 전체의 활동입니다. 각종 은혜와 특은들은 각자의 적절한 책임에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실현을 위하여 공동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이름과 힘으로 가르치는 목자들을 통해서뿐 아니라 평신도들을 통해서도 이 식별을 행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평신도들을 증인으로 삼으시고 신앙의 이해와 말씀의 은총을 주시어(사도 2,17-18; 묵시 19,10), 그들 가정과 사회의 일상생활 가운데서 복음의 힘이 빛나도록 하시었다.”12) 그뿐 아니라, 평신도는 그들의 특수한 소명 때문에 세계 역사를 그리스도의 빛으로 조명받으면서 해석하는 역할을 지닌 것과 마찬가지로, 현세적 실재들을 창조주이며 구속자이신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서 비추어보고 조직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초자연적 신앙심”13)은 오직 신자들의 합의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교회는 다수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는 진리를 추구합니다. 교회는 힘이 아니라 양심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가난한 이와 천대받는 이를 옹호합니다. 교회는 사회학적 통계 조사가 사목활동이 이루어질 역사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진리를 파악하는 데에 길잡이가 될 때에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조사 자체는 신앙심의 표현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진리 안에 머물도록 보호하고 그 진리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인도하는 것이 사도직의 임무인 까닭에, 사목자들은 모든 신자 안에 신앙심을 촉진하고, 그 표현의 순수성을 고찰하여 유권적으로 판단하며, 더욱 성숙한 복음적 식별로 신자들을 교육해야 합니다.14)
그리스도인 배우자와 부모들은 남녀가 혼인생활과 가정생활을 하는 다양한 상황과 문화 안에서 진정한 복음적 식별을 발전시키는 데에 특수하고 고유한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특은인 혼인성사의 은혜로써 이 역할을 위한 자격을 받았습니다.15)

현대세계의 가정 상황

6. 가정이 처한 상황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보여줍니다. 긍정적 측면은 세계 안에서 활동하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징표이고, 부정적 측면은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기를 거절하는 징표입니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자유에 대한 더욱 활기있는 인식, 혼인에서 상호관계의 질에 대한 더욱 큰 관심, 여성 존엄성의 촉진, 책임있는 출산, 자녀의 교육 등에 대한 좀더 깊은 관심이 있습니다. 또한 가정간 상호관계의 발전, 영적이며 물질적인 면에서의 상호 협조, 가정의 교회적 사명과 더욱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한 가정적 책임의 재발견의 필요성이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에서는, 몇 가지 기본 가치가 붕괴되는 혼란에 빠져드는 징조가 없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배우자 상호관계에 있어서 독립성에 대한 이론적이며 실천적인 그릇된 개념, 부모와 자식 간의 권위관계에 관한 심각한 오해, 가치 전수에 있어서 가정이 겪는 구체적 난관, 이혼의 증가, 인공유산의 폐해, 불임수술의 증가, 피임 사고방식의 출현 등입니다.
이상의 부정적 현상의 근저에는 관념의 타락과 더불어 자유의 개념이 혼인이나 가정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실현하는 능력으로 체험되기보다는 흔히 타인에게 해로워도, 자신의 이기적 안녕을 위한 자기 주장의 능력으로 체험되는 경험이 깔려있습니다.
우리의 관심 대상이 될 만한 또 다른 사실은 제3세계의 여러 나라에는 많은 가정에 식량, 직업, 주택, 약품과 같은 생존의 필수 수단과 아울러 가장 기본적인 자유마저도 없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부유한 나라에서는 과도한 풍요와 소비 풍조가 미래에 대한 약간의 불안과 걸맞지 않게 혼합되어, 새로운 인간 생명을 키우는 데에 필요한 관대함과 용기를 기혼 부부에게서 앗아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생명은 하나의 축복으로 파악되지 않고 자신을 방어해야 할 위험이라고 흔히 생각됩니다.
이렇게 보면 가정이 처한 역사적 상황은 빛과 어두움의 교차지점으로 보여집니다.
이것은 역사란 단순히 좀더 나은 것을 향한 고정된 전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유의 사건 또는 상호 충돌하는 자유들의 투쟁, 즉 성 아우구스티노의 유명한 표현에 따르면 두 가지의 사랑, 자신을 무시할 정도의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하느님을 무시할 정도의 자신에 대한 사랑 간의 갈등이란 점을 말해줍니다.16) 신앙에 뿌리박은 사랑을 위한 교육만이 “시대의 징표”, 즉 이 두 가지 사랑의 역사적 표현을 해석하는 능력을 길러줄 것입니다.

신자의 양심에 대한 환경의 영향

7. 대중매체에서 오는 압력을 받으며 이러한 세계에 살고 있는 신자들이 언제까지나 어떤 기본 가치의 오염에 감염되지 않은 채로 남아있으면서 가정문화에 대한 비판적 양심을 가지고 진정으로 인간다운 가정을 건설하는 데에 능동적인 역군으로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현상의 더욱 걱정스러운 징표 중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주교들은 특히 다음 것들을 강조하였습니다. 신자들의 이혼과 재혼의 확대, “주님 안에서 혼인하라.”는 신자들의 소명에 모순되는 순수 사회혼인의 팽배, 살아있는 신앙이 없이 다른 동기를 위한 혼인성사의 거행, 혼인자의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인 성생활을 촉진하고 지도하는 윤리 규범의 배척 등입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예지

8. 현재 출현하는 새로운 문화가 깊이 복음화되고, 참된 가치들이 인정되며, 남녀의 권리가 옹호되고 사회구조 안에서 정의가 촉진되기 위해서는 온 교회가 깊이 사색하고 투신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새로운 인간주의”가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사람들을 분리시키지 않고 더욱 완전한 관계로 그들을 이끌 것입니다.
과학과 과학기술의 응용은 이러한 인간주의를 건설하는 일에 새롭고 방대한 가능성을 제공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응용 방향을 결정하는 정치적 선택의 결과 때문에, 과학은 본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발전에 해롭게 쓰인 적도 흔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이 인간의 가치인 도덕 가치의 우위성을 재삼 인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사회의 쇄신을 위해서 수행되어야 할 중대한 일은 생명의 궁극적 의미와 기본 가치를 재인식하는 것입니다. 이 가치들의 우위성에 대한 인식이 회복될 때에만, 인간은 온전한 진리와 자유와 존엄성을 유지하면서 인간의 참된 진보를 가져오는 데에 과학이 제공하는 방대한 가능성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과학은 예지와 제휴해야 합니다.
그래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다음과 같은 말은 가정문제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발명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더욱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현대는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런 예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더 높은 예지를 갖춘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미래 운명은 위험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17)
따라서 도덕적 양심의 육성은 무시할 수 없는 긴급한 조건입니다. 도덕적 양심은 인간 본래의 진리에 맞추어 자기 실현을 성취하는 데에 적절한 방법을 판단하고 식별하는 능력을 모든 인간에게 줍니다.
현대문화를 하느님의 예지와 좀더 깊이 맺어진 계약관계로 이끌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느님의 창조 행위를 통해서 이 예지의 한몫을 받았습니다. 이 계약에 충실해야만, 현대의 가정들은 더욱 정의롭고 형제적인 세계의 건설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위치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점진적 회개

9. 죄악에서 연유하고 현대세계의 구조에 깊이 침투하고 있으며 가정 자체와 기본 권리의 완전한 실현을 자주 방해하는 불의와 부조리에 대하여,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이기심을 버리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정신과 마음의 회개를 통해서 대항해야 합니다. 이러한 회개가 사회구조에도 유익하고 쇄신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지속적이며 항구적인 회개이고 이 회개는 모든 죄악에서의 내적 결별과 선에 대한 완전한 집착을 요구하는 동시에, 언제나 전진하게 하는 구체적 단계를 포함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은혜와 인간의 개인생활과 사회생활 전반에 관련된 하느님의 확고하고 절대적인 사랑이 요구하는 것 사이에 진보적 통합을 점차로 가져올 역동적 과정이 발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 개인들, 가정과 민중들, 문명 자체까지도 그리스도의 신비에 관하여 이미 배운 것에서 시작하여 끈기있게 전진하고, 마침내 그들의 생활 안에서 이 신비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와 더욱 완전한 통합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성장 과정이 필요합니다.

토착화

10. 교회는 오랜 전통에 따라서 그리스도의 무한한 풍요를18) 더욱 잘 표현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여러 문화에서 받아들입니다. 모든 문화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러한 풍요가 더욱 분명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고, 교회는 이미 주님에게서 전체로 받은 그 진리에 대한 더욱 완전하고 깊은 이해를 향하여 매일매일 전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음과 여러 문화 사이의 적합성과 세계교회와의 일치라는 두 원리를 고수하면서, 특히 각국 주교회의와 교황청 관계 부처의 더 많은 연구와 아울러 좀더 근면한 사목활동이 있어야만, 그리스도 신앙의 토착화가 혼인과 가정문제에서뿐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확대될 것입니다.
토착화를 통해서만 하느님의 예지인 그리스도와의 결함없는 계약을 향해서 전진하게 됩니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인간 예지로 가득 차고 심오한 도덕 가치에서 활기를 얻는 제 문화는 전체교회를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이 여정의 목표를 분명히 정하고 방법을 명확하게 지적하기 위해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본래 계획을 깊이 고찰하기 시작한 것은 잘한 일입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쫓아 “처음으로 돌아갔습니다.”19)




제2부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인간은 사랑이신 하느님의 모상

11.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으며,20)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존재로 부르셨고 인간에게 사랑의 소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21) 그분은 원래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일치의 신비 안에 살고 계십니다. 인류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시고 계속 존재케 하심으로써,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22)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간의 기본 소명이고 타고난 소명입니다.
인간은 육화된 영, 즉 육체를 통해서 자신을 드러내는 영혼이요 불멸의 영을 부여받은 육체이기에 통일된 전체로서 사랑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사랑은 인간의 육체를 포함하고 육체는 정신적 사랑의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적 계시는 인간이 사랑의 소명을 실현하는 두 가지 구체적 방법, 즉 혼인과 동정 또는 독신을 인정합니다. 둘 중의 어느 것이나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는 한, 인간의 가장 심오한 진리의 실현이고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실현입니다.
그 결과로,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됩니다. 성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입니다. 만일 현세적 차원을 포함해서 전인간이 걸려있는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와 결실이 아니라면, 만일 인간이 완전히 바쳐지지 않는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류하거나 미래에 달리 결정할 가능성을 유보하는 경우라면, 온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한갓 거짓에 불과합니다.
부부애가 요구하는 이 전체성은 또한 책임있는 출산의 요청과도 부합합니다. 출산은 한 인간의 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본성상 순수한 생물학적 질서를 초월하며 일련의 인간 가치와 관련됩니다. 이런 가치가 조화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끈기있고 일치된 기여가 필요합니다.
모든 진실을 담아 자신을 주는 행위가 가능한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애의 계약인 혼인뿐입니다. 혼인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친히 의도하신23)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를 받아들입니다. 이렇게 조명해볼 때 혼인의 참된 의미가 나타납니다. 혼인제도는 사회와 권위에 의한 부당한 간섭이 아니고 형식을 외부에서 부과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아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의 계약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가 이 충실성으로 말미암아 제한되기보다는 온갖 형태의 주관주의나 상대주의에서 보호되어, 창조적 예지에의 참여자가 됩니다.

혼인과 하느님과 사람들의 일치

12.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사랑의 일치는 계시의 일부이고 이스라엘의 신앙 체험이며,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맺어진 혼인계약에서 적합한 표현이 발견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은 사람들을 사랑하신다.”라는 계시의 중추적 말씀은 남자와 여자가 부부애를 표현하는 구체적인 말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로 선포됩니다. 부부간의 사랑의 유대는 하느님과 사람들을 일치시키는 계약의 모상이고 상징입니다.24) 따라서 부부계약을 해칠 수 있는 죄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람들의 불충실의 상징이 됩니다. 우상숭배는 매음 행위로,25) 불충실은 간음으로, 율법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의 정배적 사랑을 배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불충실은 주님의 영원한 충실을 파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한결같이 성실한 사랑은 부부 사이에 있어야 할 성실한 사랑관계의 본보기로 제시되었습니다.26)

교회의 신랑인 예수 그리스도와 혼인성사

13.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일치는 인류의 구세주로서 사랑과 아울러 자신을 주었을 뿐 아니라 인류를 당신 몸에 일치시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그분은 혼인의 본래의 진리, “처음”의 진리27)를 밝혀주셨고 굳어진 마음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면서 이 진리를 완전히 실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성을 취함으로써 인류에게 보여주신 사랑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신부인 교회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감수하신 희생에서 결정적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 희생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창조 때부터28)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부여해놓으신 그 계획이 완전히 드러났습니다. 세례받은 사람들의 혼인은 그리스도의 피로써 맺어진 그 새롭고 영원한 계약의 참된 상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려주신 성령은 새로운 마음을 가져다주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할 수 있게 합니다. 부부애가 내재적으로 지향하는 그 완성에 도달하면 부부 애덕이 되고,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주시면서 보여주셨던 그 사랑을 부부가 실천하고 참여하는 적절하고 특수한 방법입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그 유명한 문구에서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부부생활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였습니다. “교회가 맺어주고 제물이 강화하고 축복이 보증하고, 천사가 선언하며, 아버지께서 인준하신 혼인의 행복을 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나의 희망, 하나의 소망, 하나의 준수, 하나의 봉사로 뭉친 두 신앙인의 유대는 얼마나 경탄스러운가? 그들은 둘 다 형제이고 절친한 봉사자이다. 그들 사이에는 정신이나 육체에 있어 전혀 거리가 없다. 사실 그들은 진실로 한 몸 안에 둘이고 몸이 하나인 곳에 정신도 하나이다.”29)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정성되이 묵상하면서 교회는 세례받은 자의 혼인은 신약의 칠성사 중의 하나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가르쳐왔고 계속 가르치고 있습니다.30)
세례로써 남자와 여자는 진정 새롭고 영원한 계약, 그리스도와 교회의 부부다운 계약 안에 확실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바로 이 영원한 개입으로 인해서, 창조주가 세운31) 부부생활과 사랑의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부부적 사랑으로 격상되고, 그분의 구원의 힘으로 유지되고 풍요롭게 되는 것입니다.
혼인의 성사성의 덕분으로, 부부는 결코 풀릴 수 없는 정도로 서로 맺어지는 것입니다. 그들의 상호 유대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 자체에 대한 성사적 징표이고 진정한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들은 십자가 위에서 일어난 일을 교회에게 계속 상기시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나 자녀들에게는 구원의 증인이고, 성사는 그들을 구원의 참여자로 만듭니다. 다른 성사와 마찬가지로 이 구원의 사건에 대하여 혼인은 기념이고 실현이며 예언입니다. “기념으로서, 혼인성사는 하느님의 위대한 사업을 기념하고, 자녀들 앞에서는 그 사업을 증거하는 은혜와 의무를 부부에게 부여합니다. 실현으로서, 혼인성사는 용서와 구원을 가져온 위대한 사랑의 요청을 서로와 자녀들을 향하여 실천할 은혜와 의무를 줍니다. 예언으로서, 혼인성사는 앞으로 있을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대한 희망을 증거하며 살아갈 은혜와 의무를 주는 것입니다.”32)
모든 칠성사가 그러하듯, 혼인은 고유한 양식으로 구원 사건의 참된 상징입니다. “부부는 함께 구원 사건에 참여하기 때문에 혼인의 우선적 직접적인 효과(res et sacramentum)는 초자연적 은혜가 아니고 그리스도인 부부의 유대, 두 사람의 그리스도교적 일치입니다. 혼인은 그리스도의 육화의 신비와 계약의 신비를 표출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내용도 독특합니다. 부부애는 전체성, 곧 육체와 본능의 요구, 감정과 애정의 힘, 정신과 의지의 소망이 담긴 인격 전체의 모든 부분을 포함합니다. 부부애는 육체의 일치를 넘어 한마음과 한 영혼을 이루는 깊은 인격적 일치를 도모하는 것이며, 결정적인 상호 증여의 불가해소성과 신의를 요구합니다. 그리고 부부애는 출산의 문을 열어놓습니다(회칙 「인간 생명」, 9항 참조). 한마디로 이것은 모든 자연적 부부애의 정상적 특성들이지만 그 특성들을 정화하고 강화할 뿐 아니라, 승화시켜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표현이 되게 하는 새로운 의미가 덧붙여집니다.”33)

자녀는 혼인의 소중한 선물

14.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혼인은 가정이라는 더욱 넓은 공동체의 기초입니다. 혼인제도와 부부애는 그 절정이라고 보여지는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합니다.34)
가장 심오한 의미에서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선물입니다. 그리고 부부애는 “한 몸”35)이 되게 하는 상호 “인식”으로 부부를 이끌어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부애는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됩니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부부애의 살아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 불가분한 종합입니다.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에게서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이는 징표가 되어야 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의 이름이”36) 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산이 불가능한 경우에라도, 그 이유 때문에 부부생활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육체적 불임은 사실 부부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위한 다른 중요한 봉사의 기회, 예를 들면 양자, 각종 교육활동, 다른 가정과 가난한 이나 불구 아이들에 대한 봉사의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

15. 혼인과 가정 안에서 복잡한 인간관계 - 혼인생활, 아버지와 어머니의 관계, 부모와 자식의 관계, 형제관계 등 -가 수립됩니다. 그 관계를 통해서 각사람은 “인간 가족”과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과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교회를 건설합니다. 가정 안에서 인간이 존재를 얻고 교육을 통해서 인간 공동체로 서서히 들어올 뿐 아니라, 세례의 재생과 신앙교육을 통해서 아이는 교회인 하느님의 가족 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죄악으로 인해서 분열되었던 인간 가족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구원하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일치되었습니다.37)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이 사건의 구원적 효과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이 교회의 위대한 가족으로 들어오는 자연스러운 발판이 됩니다.
맨처음 남자와 여자에게 내려진, 성장하고 번식하라는 명령은 혼인을 통해서 완전한 진리와 실현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사로써 탄생한 가정을 보금자리와 발판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을 거쳐서 교회는 인간의 새세대로 들어가고 새세대는 교회로 들어옵니다.

혼인과 동정 또는 독신

16.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동정 또는 독신은 혼인의 존엄성을 위배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전제하고 강화합니다. 혼인과 동정 또는 독신은 하느님과 사람들의 계약의 신비를 표현하고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입니다. 혼인이 존중되지 않으면, 성화된 동정이나 독신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성(性)이 창조주가 주신 중대한 가치로 인정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위한 성의 포기도 의미를 상실합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말씀은 진정으로 옳습니다. “혼인을 모욕하는 사람은 동정의 영광도 감소시킵니다. 혼인을 찬양하는 사람은 동정을 더욱 장하고 빛나는 것으로 만듭니다. 악과 비교해서만 좋게 보이는 것은 특별히 좋은 것은 못됩니다. 가장 훌륭한 것은 좋다고 인정되는 것보다 더욱 좋을 것입니다.38)
동정 또는 독신으로 살면서, 인간은 육체적으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종말론적 혼인을 기다리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영생의 진리 안에서 자신을 교회에게 주실 것을 희망하면서 동정인은 자신을 완전히 교회에 바치는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독신자는 다가올 부활의 새로운 세계에 육체적으로 대비하는 것입니다.39)
이런 증언을 통해서 동정 또는 독신은 혼인신비에 대한 의식을 교회 안에 살아있게 하고, 감소되고 허약해지지 않도록 교회를 보호합니다.
동정 또는 독신은 특유한 방법으로 인간의 마음을 해방시키고40) “더욱더 하느님과 모든 사람에게 대한 사랑으로 불타게 함으로써”41) 하느님의 나라와 정의는 아무리 큰 다른 모든 가치보다도 더 훌륭한 값비싼 진주이며, 따라서 단 하나의 결정적 가치로서 추구되어야 할 진주임을 증언합니다. 동정과 하느님의 나라 사이에는 전적으로 특유한 연결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역사를 통해서 혼인에 대한 이 특은의 우월성을 항상 주장해왔습니다.42)
독신자는 육체적 출산력을 포기함에도 불구하고 영성적으로는 결실을 많이 내어, 많은 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되고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가족을 현실화하는 데에 협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부는 좋은 모범과 죽을 때까지 자기 소명에 충실하게 사는 증언을 독신자에게서 기대할 권리를 갖습니다. 충실성은 때때로 혼인자들에게 어려운 문제여서 희생, 극기, 자기 부정을 요구하듯이, 같은 문제가 독신자들에게도 있을 수 있으므로 독신자의 충실성은 시련 중에 있는 기혼 부부의 충실성을 강화해야 합니다.43)
동정이나 독신에 관한 이상의 숙고는 본의와는 무관한 이유로 혼인하지 못하였으나 그 상황을 봉사의 정신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빛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3부 그리스도인 가정의 역할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17. 가정은 창조주이고 구속자이신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그 정체(Identity)뿐 아니라 사명을 발견합니다. 하느님의 소원에 따라 가정이 역사에서 수행할 역할은 가정의 됨됨이에서 연유합니다. 가정의 역할은 결국 가정의 됨됨이의 역동적이고 실존적인 발전을 의미합니다. 각가정은 자신 안에서 무시될 수도 없고 동시에 자신의 존엄성과 책임을 규정해주는 부르심을 발견합니다. 가정은 본연의 것이 되어라.
따라서 가정이 자신의 됨됨이뿐 아니라 역사적 활동의 내재적 진리에 부합하게 자기 인식과 자기 실현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하느님의 창조 행위의 “시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은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부부생활과 부부애로 깊이 맺어진 공동체”로서44) 설립되었기 때문에, 본연의 됨됨이에 더욱 가까운 것, 즉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가 될 사명이 있으며, 창조되고 구원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 하느님의 나라 안에서 완성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뿌리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런 식으로 조명해보면, 가정의 본질과 역할은 결국에는 사랑으로 규정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래서 가정은 사랑을 보호하고 드러내며 전달해야 할 사명을 지닙니다. 이것이 바로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아울러, 신부인 당신 교회를 위한 주 그리스도의 사랑을 활기있게 반영하고 진정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가정의 모든 특수 임무는 이 기본 사명의 표현이고 구체적 실현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특별히 풍요한 사명으로 깊이 파고들어, 다양하고도 통일된 그 내용을 검토해야 합니다.
사랑을 출발점으로 하고 그것을 변함없는 준거점으로 삼으면서 최근에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가정의 네 가지 일반적 임무를 강조하였습니다.

1) 인간 공동체의 형성
2) 생명에의 봉사
3) 사회발전에의 참여
4) 교회의 삶과 사명에의 참여

Ⅰ. 인간 공동체의 형성

사랑은 일치의 원리이고 힘

18. 사랑에 의해서 세워지고 생명을 받는 가정은 인간들의 - 즉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들의 - 공동체입니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입니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없이는 가정이 살아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서 완성될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말한 것은 일차적으로 특별히 가정에 적용됩니다. “인간은 사랑없이 살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生)은 무의미합니다.”45)
남편과 아내의 사랑, 파생적이고 더 넓게는 같은 가정의 성원들 간의 -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가정의 친척과 성원들 간의 - 사랑은 가정을 더욱더 깊고 강렬한 일치에로 이끌어가는 끊임없는 내적 역동성에서 생명과 보조를 받습니다. 이 일치는 혼인과 가정 공동체의 기반이고 영혼입니다.

부부 공동체의 불가분적 일치

19. 첫째 공동체는 남편과 아내 사이에서 설립되고 발전하는 공동체입니다. 혼인생활의 계약으로 말미암아 남자와 여자는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이고”46) 그들은 상호적 자기 봉헌의 혼인 약속에 대하여 매일매일 충실하면서 일치에 있어서 계속 성장할 소명을 받습니다.
이 부부의 일치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 존재하는 자연적 보완성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전체적 생활 계획, 가진 것과 됨됨이를 나누려는 부부의 인격적 노력을 통해서 성장합니다. 이 때문에 이 일치는 인간의 깊은 요구의 결실이고 징표입니다. 그러나 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이 인간적 요구에 유의하여 그것을 확인하고 정화하시며 들어올리사, 혼인성사를 통해서 완성으로 이끄십니다. 그 성사 집행에서 오시는 성령은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사랑의 새로운 공동체의 은혜를 주십니다. 이 공동체는 교회를 주 예수의 신비체로 만드는 저 특수한 일치에 대한 살아있는 진실된 모상입니다.
성령의 은혜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내려진 생활의 계명이며 동시에 자극적 충동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차원에 있어서 - 육체, 성격, 마음, 지성과 의지, 영혼 등47) - 더욱 풍요로운 일치를 향하여 진보할 수 있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해서 받은 사랑의 새 공동체를 교회와 세계에 드러낼 수 있습니다.
이 공동체는 일부다처제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됩니다. 일부다처제는 혼인 안에서 온전하고 그러기에 특유하며 배타적인 사랑과 함께 자신을 바치는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에 위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계시된 하느님의 계획을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말씀과 같이 “서로의 완전한 사랑 속에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평등하게 인정해야 할 인격적 존엄성은 주께서 확인하신 혼인의 단일성을 밝혀줍니다.”48)

불가분의 일치

20. 부부의 일치는 단일성만 아니라 불가해소성으로도 특징지어집니다. “이 깊은 일치는 인격과 인격의 상호 교환이므로, 자녀의 행복이 요구하듯이, 부부의 완전한 신의와 그 일치의 불가해소성을 강요합니다.”49)
교회의 기본 의무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그러하였듯이, 혼인의 불가해소성 교리를 강력하게 재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는 일생 동안 한 사람에게 매여있는 것은 너무 어렵다거나 불가능하다고 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배척하고 부부가 정절에 투신하는 것을 공개적으로 비웃는 문화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그 기반과 힘을 발견하는50) 부부애의 뚜렷한 본성에 대한 복음을 재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부부의 인격적이고 완전한 자기 봉헌에 뿌리 내리고 있으며 자녀들의 행복이 요청하는 것일 뿐 아니라, 계시에서 나타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궁극적 진리를 발견합니다. 하느님 자신이 인간에 대하여, 또한 주 예수님이 교회에 대하여 품으신 절대적으로 충실한 사랑의 징표, 결실, 요구 조건으로서의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하느님께서 원하셨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주가 남자와 여자의 마음에 새겨놓은 최초의 계획을 재생시키고 혼인성사의 집행에서는 “새로운 마음”을 주십니다. 그래서 부부는 “굳은 마음”51)을 극복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무엇보다도 새롭고 영원한 계약에서 사람이 된, 그리스도의 완전하고 결정적인 사랑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주 예수께서는 “진실하신 증인”52)이시고,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응답”53)이시며 따라서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사랑하면서 보이셨던 조건없는 충실성의 최고의 실현인 것과 같이, 그리스도인 부부는 끝까지54) 사랑을 받은 신부인 교회와 그리스도를 매어놓는 취소될 수 없는 불가해소성에 진정으로 참여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혼인성사의 은혜는 그리스도인 부부에게 소명인 동시에 명령이기 때문에, 그들은 모든 시련과 곤란을 넘어, 주님의 뜻에 관대하게 순종하면서 언제나 서로에게 충실해야 합니다. “그러니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됩니다.”55)
혼인의 불가해소성과 정절의 무한한 가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은 현대 그리스도인 부부의 가장 값지고 긴급한 임무입니다. 그래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에 참석하였던 모든 형제들과 함께, 본인은 적지 않은 곤란을 당하면서도 불가해소성의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많은 부부들을 찬양하고 격려하는 바입니다. 그들은 겸손하고 용감하게 자신들에게 부여된 역할,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을 사랑하면서 보여주신 틀림없는 충실성의 징표 - 때때로 유혹을 당하지만 언제나 이겨내는 작고 소중한 징표 - 같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배우자의 배반을 받고도 그리스도적 희망과 신앙의 힘을 가지고 재혼을 하지 않은 배우자들의 증언의 가치도 인정해주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배우자들도 오늘의 세계가 극히 필요로 하는 충실성에 대하여 진정으로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의 목자와 신자들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가정의 폭넓은 일치

21. 부부 일치는 가정의 더욱 폭넓은 일치, 부모와 자녀, 형제와 자매, 친척과 가족의 다른 성원과의 일치를 이루는 기초가 됩니다.
이 일치는 혈육의 자연적 유대에 뿌리를 내려, 더욱 깊고 풍요한 정신의 유대가 맺어지고 성숙하면서 특별히 인간적 완성으로 성장합니다. 가족의 여러 성원들간의 상호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사랑은 가정의 일치와 공동체를 구체화시키고 활력을 불어넣는 내적인 힘을 이룹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일치를 보강하고 완성하는 새롭고 독창적인 일치를 체험하는 소명도 받았습니다. 사실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56)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가 이름지은 것처럼,57) 본성적이고 내재적인 역동성으로 말미암은 “형제애의 은혜”입니다. 혼인성사의 거행 때에 내려오시는 성령은 신자들을 모으고 하느님 교회의 일치 안에서 그들을 그리스도뿐 아니라 서로에게 연결시키는 초자연적 일치의 살아있고 끝없는 원천이고 협조자이십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은 교회적 일치의 특수한 표출이고 실현이기 때문에, 이것은 “가정교회”58)라고 불릴 수도 있고 불려야 합니다.
가정의 모든 성원은 각자의 고유한 특은에 따라, 매일매일 인간들의 일치를 건설할 은혜와 책임을 가지고 있으며, 가정을 “더욱 풍요한 인간성을 길러내는 학교”59)로 만들 책임도 있습니다. 어린아이들, 병자들, 노인들을 돌보고 사랑하는 곳에서, 매일 서로 봉사하는 곳에서, 가진 것을 나누고 기쁨과 슬픔의 나눔이 있는 곳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치를 건설하는 기본적 기회는 부모와 자식 간에60) 서로 주고받는 교육적 교환으로 마련됩니다.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순종함으로써, 자녀들은 참으로 인간다운 그리스도인 가정을 건설하는 데에 특수하고 고유한 기여를 제공합니다.61) 만약 부모들이 자기들의 정당한 권위를, 진실되고 적절한 “직무”답게, 즉 자녀의 인간적이며 그리스도적인 행복을 위한 봉사답게, 특히 자녀가 책임있는 자유를 습득하는 것을 도우려는 봉사답게 행사한다면, 또한 만약 부모들이 자녀에게서 받은 ‘은혜’에 대하여 생생한 인식을 유지한다면, 자녀들의 기여는 훨씬 용이할 것입니다.
가정의 일치는 지대한 희생 정신으로써만 보존되고 완성될 수 있습니다. 사실상 그것은 모든 가정 성원들에게 이해, 인내, 용서, 화해에 대하여 신속하고도 관대한 개방성을 가질 것을 요청합니다. 이기심, 불화, 긴장, 갈등이 얼마나 심하게 가정의 일치를 침해하고 때로는 치명적으로 상처를 입히는지를 모르는 가정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에서 수없이 다양한 형태의 분열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가정은 즐겁고 참신한 화해의 체험, 즉 회복된 일치의 체험을 맛볼 소명을 평화의 하느님께로부터 받고 있습니다. 특히 화해의 성사와 그리스도의 몸의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모든 분열을 극복하는 은혜와 책임,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주십시오.”62) 하신 주님의 열절한 소망에 응답하면서 하느님이 원하신 완전한 일치에로 다가가는 은혜와 책임을 그리스도인 가정에 줍니다.

여성의 권리와 역할

22. 가정은 사람들의 일치이며 공동체이고, 또 언제나 그래야 하기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즉 하느님의 살아있는 모상으로서 고상한 존엄성을 지닌 모든 성원들을 환대하고 존경하며 키워줄 근원과 계속적 동기를 사랑 안에서 발견합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가 올바르게 주장하였듯이, 진정한 부부관계와 가족관계의 도덕적 기준은 성실한 자기 봉헌으로써 완성을 성취하는63) 개인들의 존엄성과 소명을 육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이러한 전망에서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가정과 사회 안에서 여성의 권리와 역할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같은 전망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성과, 어린이와 노인도 고찰되어야 합니다.
우선 여성의 존엄성과 책임은 남성의 것과 동등하다는 점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동등성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에게 특유한 양식으로 자기 봉헌을 하고, 둘이 혼인과 가정에 의당히 있는 자녀에게 자기 봉헌을 하는 데에서 실현됩니다. 인간의 이성이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인정한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완전히 계시되었습니다. 사실 구원의 역사는 여성의 존엄성을 계속해서 밝게 증언합니다.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64) 창조하실 때에,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동등한 인격적 존엄성을 주시고, 인간에게 적합한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책임을 부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하느님의 어머니로 공경하고 새로운 하와라고 부르며 구원된 여자의 본보기로 내세우는 동정 마리아에게서 인간 육체를 취하셨을 때, 여자의 존엄성을 가장 높이 드러내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고 친절을 베풀었던 여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민감한 존경, 부활날 아침에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한 여자에게 나타나심, 부활의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여자에게 주심 - 이 모든 징표는 여성에 대한 예수님의 특별한 존경심을 확증해줍니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삶으로써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65)

여성과 사회

23. 여성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방대하고 복잡한 문제의 모든 측면을 취급할 의도를 두지 않고 몇 가지 본질적인 점에 언급을 한정시키고자 하면서도, 일반적 사회문화의 전통이 여성의 역할은 가정생활의 특수분야에서 단지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에 국한되고, 보통으로 남성에게 지정되어온 공적 기능에는 접근하지 않는 것이라고 보아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과 책임이 공적 기능에 대한 여자의 진출을 충분히 정당화한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습니다. 반면에 다른 모든 공적 역할과 직업에 비해서 모성적이고 가정적인 역할의 가치가 분명히 인정을 받아야, 여성의 참된 진출이 가능합니다. 또한 사회와 문화의 인간적 진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과 직업이 조화있게 짜여져야 합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의 소망에 따라서, 만약 참신한 “노동신학”이 그리스도인의 생활에서 노동의 의미를 조명해주고 깊이 연구하며, 노동과 가정의 기본 유대와 가정에서나 자녀양육에서 이루어지는 노동의 본래적이고 고유한 의미를 규정한다면,66) 조화있는 짜임새가 용이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여자의 가사 노동의 고유한 가치를 모든 이가 인정하고 존경해야 한다고 계속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현대사회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매우 중요합니다. 일단 여러 형태의 노동과 직업 간의 차별이 그 근본에서부터 제거되면, 모든 사람은 각분야에서 동등한 권리와 책임을 가지고 일한다는 것이 분명해질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와 여자에게서 하느님의 모상이 더욱 밝게 보일 것입니다.
각종의 공적 기능을 이해하는 데에 여자와 남자가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고 인정해야 하지만, 아내와 어머니들이 실제로 집 밖의 노동에 강요되지 않고 그들이 전적으로 가정일에 전념함으로써 그들의 가정이 품위있게 살고 번영을 누릴 수 있는 그러한 사회가 건설되어야만 합니다.
더 나아가, 가정 내의 노동보다는 가정 밖의 노동 때문에 여자를 더 인정하는 정신은 극복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인격적인 존엄성을 근거로 진정으로 여자를 존경하고 사랑하며, 사회는 가정 내의 노동을 유리하게 하는 조건을 창조하고 발전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의 상이한 소명을 적절히 존중하면서, 교회는 자신의 생활 안에서 남녀의 동등한 권리와 존엄성을 가능한 한 촉진해야 하며 이것은 모든 사람, 가정, 교회, 사회의 행복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물론 이것은 여자들이 여성다움을 포기하고 남성의 역할을 모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완전하고 충분한 여성적 인간성이 관습과 문화의 차이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가정에서나 밖에서 행동으로써 표현되어야 합니다.

여성의 존엄성 침해

24. 불행히도, 인간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이기심과 순수한 쾌락에 봉사하는 물건으로나 거래 대상으로만 보는 정신이 끈질기게 여성의 존엄성에 관한 그리스도교 메시지에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 정신의 첫째 희생자는 여성입니다.
이 정신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멸시, 노예제도, 약자 억압, 도색인쇄물, 특히 조직적인 매춘 행위와 같은 매우 쓰라린 결과뿐 아니라, 교육, 취업, 임금 등의 제 분야에서 발견되는 여러 형태의 차별 대우를 창출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에 오늘날 아직도 널리 존속하는 많은 종류의 치욕적인 차별은 특수 부류의 여자들, 예를 들면 자녀없는 여자, 과부, 별거 중이거나 이혼한 여자, 미혼모들에게 심각한 침해를 가하고 있습니다.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이런 형태의 차별 대우를 강력하게 비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그 차별 대우를 말끔히 극복하기 위하여 모든 이가 힘차고 단호한 사목활동에 착수하라고 요청하는 바이고, 그래서 모든 인간에게서 빛나는 하느님의 모상이 충분히 존중되기를 바랍니다.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남성

25.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 안에서 남자는 남편과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은혜를 지니어 살아갈 소명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아내를 가짐으로써 하느님의 의도를 채우는 것입니다. “아담이 혼자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주리라.”67) 그리고 남자는 첫번째 남편이었던 아담의 외침을 반복하게 됩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68)
남자가 자기 아내의 동등한 존엄성을 깊이 존중하는 것이 진정한 부부애에서 전제되고 요구됩니다. 성 암브로시오는 이렇게 서술하였습니다. “당신은 그녀의 주인이 아니라 남편이다. 그녀는 당신의 종이 되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아내가 되어야 한다. 당신에 대한 아내의 관심에 보답하라. 그리고 그녀의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라.”69) 남자는 자기 아내와 더불어 “인격적 사랑의 특수형인 부부애”70)를 갖추어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남자는 새로운 사랑의 태도를 발전시키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대하여 가지신 것과 같은 인내롭고 열렬한 사랑을 아내에게 표시할 소명을 받고 있습니다.71)
남자가 자기 자녀의 어머니인 아내를 사랑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부성을 이해하고 수행하는 자연스러운 길입니다. 특히 사회 문화적 조건의 요청 때문에, 아버지가 가족에 대하여 관심을 덜 갖고 또는 무슨 이유로든 교육활동에 덜 관여하게 되는 지역에서는, 가정 내에서 아버지의 위치와 임무는 특수하고 고유한 것이란 확신이 사회적으로 회복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72)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버지의 부재는 가족관계 안에 심리적 도덕적 불균형과 더불어 주목할 만한 곤란을 야기시키고, 반대로 특히 강한 “남성 의식”(Machismo)의 현상이 아직도 우세한 곳에서, 또는 여자를 모욕하고 건전한 가족관계의 발전을 저해하는 그릇된 남성 특권의 우월성이 있는 곳에서, 억압적 아버지의 존재도 비슷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남자는 지상에서 하느님의 부성73)을 드러내고 되살리며, 가족의 모든 성원의 조화있고 일치된 발전을 도모할 소명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속에서 잉태된 생명에 대한 책임을 관대하게 행사하고, 아내와 나누어가며74) 자녀교육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신할 뿐 아니라, 가정 내에 결코 분열을 초래하지 않고 오히려 일치와 안정을 도모하는 활동을 통해서, 또한 자녀들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산 체험에로 효과적으로 끌어들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다운 생활을 보여줌으로써만, 남자는 자기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녀의 권리

26. 인간들의 공동체인 가정에서는 특별한 관심이 자녀에게 집중되고, 그들의 존엄성에 대한 깊은 존경과, 그들의 권리에 대한 지대한 존경과 관심이 발전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자녀에게 해당하지만, 자녀가 어릴수록 그 요청은 더욱 절실하며, 병들어 고통을 당하거나 불구자일수록 모든 것에 대한 요청은 더욱 커집니다.
교회는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부드럽고 강력한 관심을 촉진하고 행사함으로써 하나의 기본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교회가 어린이를 하느님 나라의 복판에 앉힌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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