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원리 > 전교의 달 담화문
71. 2012년 전교의 달 담화문 (0)
작성자 : 복음화위원회
등록일 : 2019.10.08 14:26
조회수 : 205
이메일 :
홈페이지 :

201210월 전교의 달 담화문

 

신앙의 해와 새로운 복음화

- 내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

 


교형자매 여러분!

 

1. 근래에 와서 우리 가톨릭 교회는 전세계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를 연거푸 열고 있습니다. 200810월에는 하느님의 말씀을 주제로 제12차 세계 주교 대의원 회의(이하 시노드라고 표기)가 열렸고, 201210월에는 새로운 복음화를 주제로 제13차 시노드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20121011일부터 201311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는 신앙의 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은 하나의 이유 혹은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 안에서 신앙의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교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서 사도적 확신을 가지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에 와서 새로운 복음화를 외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길은 어떤 것이겠습니까? 이 점에 관해서, 새로운 복음화의 진원지라고 할 수 있는 남미의 브라질 대표 주교님이 지난 12차 시노드(2008)에 오셔서 하신 말씀은 우리에게 큰 참고가 될 것입니다.

 

- 남미와 카리브 연안 국가 주교회의 연합 제5차 총회는 많은 가톨릭 신자들이 교회를 떠나는 현상에 주목하면서 복음 선교 현황을 돌아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그 동안의 사목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 교회를 떠나는 성실한 사람들은 비 가톨릭 신자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사정 때문에 타 교파를 찾아갑니다. 그것은 교회가 주장하는 교의나 어떤 사목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자기네 체험 때문에 움직입니다. 어떤 신학적 이유가 아니라, 교회 안의 어떤 방법론적 문제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 집단을 향해 떠나는 사람들은 우리 교회를 등지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하느님을 찾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다른 교파로 들어가면, 짧은 시간 안에 그 삶의 태도가 확 달라집니다. 믿는 사람으로서 격에 맞지 않는 생활 태도를 버리고 칭찬할 만한 행동 양식을 지니게 됩니다. 그들이 듣는 말씀은 그 삶 속에서 구체적인 효력을 내고, 그 내면 생활을 길러 주며, 마음속 깊이에 받아들여 소화시킨 종교적 가치들을 서슴없이 드러내고 증언하게 합니다.

, 그러면 그들이 가톨릭 신자였을 때에는 똑같은 하느님 말씀이 별 효력을 내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우리 공동체 안에 머물던 때에는 찾지 못하다가 다른 교파로 건너가서는 마침내 찾아낸 것이 있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 그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과 그 말씀에 굶주리고 목말라한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엄중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채워 줄 능력이 있는 복음의 사도가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것이겠습니까?” -

 

신앙인들이 우리 교회를 떠나 다른 교파로 건너가는 이유에 관해 남미 현지의 주교단이 내린 결론은, 신자들이 우리 교회에서 오랜 동안 신앙 생활을 실제로 해본 경험”, 우리 교회가 그 동안 사용해 온 방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다시 분석하면, 신자들 측에서는 정말로 하느님을 찾고 싶어하는데우리 교회에서는 그것이 잘 안 된다는 것을 경험했고, 사목자들의 편에서 보면, 신자들에게 그 목마름을 채워 주기 위해서 지금까지 사용해 온 방법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른 교파로 건너간 사람들의 삶에 나타난 변화에서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남미에서는 하루에도 7천 명의 가톨릭 신자들이 우리 교회를 떠나 다른 교파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대륙 가운데 전체 인구 대비 가톨릭 인구 비율이 가장 큰 데가 남미입니다. 그것이 1940년에는 95.2%에 달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1980대에 들어서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하여 2000년에는 73.8%로 내려 갔고, 2010년의 통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은 70% 이하가 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와 같은 가톨릭 인구의 빠른 감소는 같은 기간 개신교 인구의 급속한 증가와 대조를 이룹니다. 남미에서 1940년에 개신교 인구는 2.6%였는데 2000년에는 15.4%로 증가하였고, 2010년에는 약 20%가 될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추측하고 있습니다.

 

2. 이것은 다분히 남미 특유의 선교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현상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지역 교회 역사 초기에는 선교사들의 말이 현지인들에게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 지역은 뱀으로 상징되는 우상 숭배가 지배하고 있었고, 그 우상에게 산 사람의 심장을 바치는 제사가 성행하였습니다. 어떤 신전을 중수하고 그것을 기념해서 치른 의식에서는 2만 명의 장정들을 희생시켜 그 우상에게 바쳤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큰 공포 속에서 살았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후안 디에고라는 본토인이 1530년대에 현시 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뱀을 짓밟고 있는 모습을 본 것을 계기로, 주민들이 대거 교회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선교사는 혼자서 100만 명에게 세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적절히 가르쳐 줄 시간도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성서가 지역 언어로 번역되지도 않고 따라서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거의 막혀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복음 없는 선교가 이루어진 것이 화근이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바오로 사도 시대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으며, 그때 이 위대한 사도께서 외쳤던 말씀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1코린 1,17). 그때에도 이미 세례는 받았지만 복음화는 되어 있지 않은 명목상의 신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생각은 복음과는 대조되는 인간적 지혜나 상식의 수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고, 그 때문에 교회 안에 여러 분파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사도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멸망한 자들에게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어리석은 것이지만, 구원을 받을 우리에게는 하느님의 힘입니다. 사실 성경에도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지혜를 부수어 버리고 슬기롭다는 자들의 슬기를 치워 버리리라’”(1코린 1, 17-19).

3. 이런 배경을 고려하면 새로운 복음화가 왜 필요한지를 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이 오늘날 쓰이는 대로의 의미와 무게를 지니고 정식으로 사용된 것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남미 선교 5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하신 강론에서였습니다. “이 대륙의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말 의미를 지니려면, 주교 여러분이 각자 소속 사제와 신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헌신으로 복음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복음화여야 합니다. 열정에서, 방법에서, 그리고 표현에서 새로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특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성서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 신자들이 하느님 말씀을 쉽게 대하게 되고 주님을 깊이 만나서 삶이 바뀌고 있는 것은 잘 알려진 대로입니다. 하지만, 우리도 사제, 수도자, 평신도 등 교회 구성원 모두의 삶 속에 하느님 말씀이 더욱 널리 그리고 더욱 깊이 침투하여 빛과 힘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까지에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남미의 경험이 우리에게도 반면교사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새로운 복음화를 주창하면서 제일 많이 거론하는 것은 사도 시대로 돌아가 그들의 정신을 본받자는 것입니다. 특히 바오로 사도가 복음화를 위한 모델로서 새로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복음 없는 선교의 문제를 겪으며, 바오로 사도께서는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1코린 1-2)에서 복음 선포의 특성을 대단히 명확하게 제시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네딕도 15세 교황께서는 1917년 강론을 주제로 한 칙서 인류의 구원자에서 바오로 사도를 모든 강론가들의 모범으로 제시하셨습니다. 사도께서는 당신 복음 선포의 특성을 이런 말씀으로도 표현하셨습니다.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1코린 2, 4-5).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우리 신앙의 핵심을 어떤 인간적 지혜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그것은 성령을 통해서 성령의 언어로만 표현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되었습니다.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마련해 두셨다.’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그것들을 바로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1코린 2, 9-10). 그리고 성령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뀌고 나서는 구약성서를 생각하며, 그것마저 뛰어넘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코린 2, 1-16).

 

4.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믿음의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하든, 그 지위가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오늘날 우리는 각자 처음으로 돌아가 나는 과연 참으로 믿는 사람인가?” 하는 질문 앞에서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우리는 세 가지 질문으로 자신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를 받고 사랑에 찬 위로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친교를 나누고 애정과 동정을

번호 제목 작성자 날짜 조회
19 2018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70
18 2017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45
17 2016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64
16 2015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55
15 2014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51
14 2013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34
13 2012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06
12 2011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04
11 2010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19.10.08 218
10 2008년 전교의 달 담화문 복음화위원회 08.09.23 1993
12
홈으로  |  로그인  |  개인정보취급방침  |  사이트맵  |  이메일무단수집거부  |  관리자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