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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한국 천주교회 복음 선교의 토착화 대책과 전망(1990년) (0)
작성자 : 복음화위원회
등록일 : 2008.06.18 13:02
조회수 :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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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 복음 선교의 토착화 대책과 전망

복음 선교의 토착화 <5>



일 시 : 1990년 6월 25일(월) 오후 2시~5시

장 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사 회 : 조광(교려대학교 교수․국사학)

주 제 : 한국천주교회 복음선교의 토착화 대책과 전망

주제발표 : 김정수(사목 주간․신부․사목신학)

약정토론 : 김유철(대구가톨릭대학 교수․신부․사목신학)

김종수(서울대교구 공덕동천주교회 신부․전례학)





1. 들어가는 말



한국 교회의 앞날이 복음 선교의 성패 여하에 달려 있다는 소리를 흔히 하고 있다. 한국 교회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는 사목 회의에서도 한국 교회의 발전과 한국 민족의 구원을 위한 토착화 작업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이를 위한 조그마한 노력으로 한국사목연구소가 전례, 영성, 교리 교육 3차례에 이어 복음 선교라는 주제로 한국 교회의 토착화 작업을 위한 연구 발표회를 계속하고 있다.1) 한국에서 복음 선교의 토착화를 가늠하기 위하여 먼저 성서와 선교학의 관점에서 토착화 이론을 다루었고 한국 교회 복음 선교의 어제와 오늘의 실상을 분석 평가한 뒤 해외 복음 선교의 현실과 전망을 살펴보았다.2)

선교에 대한 이론적인 정립을 지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밝힌 바 있다 : “교회로부터 파견된 복음의 전파자들이 온 세계에 가서 복음 전파의 임무와 아직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백성들과 집단에 교회를 부식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독특한 사업을 ‘선교’라고 부른다. 이것은 선교 활동을 통하여 완수되며 보통으로는 성청으로부터 인정된 일정한 지역들에 있어서 실행되고 있다. 이런 선교 활동의 본 목적은 아직 교회가 뿌리를 박지 못한 백성이나 집단에 복음을 선포하여 교회를 부식하는 일이다.”3) 그러나 1974년 제3차 주교 대의원 총회의 결롸고 교황 바오로 6세가 펴낸 ‘현대의 복음 선교’에는 복음 선교의 개념이 한 단계 발전하였다. 즉 복음 선교가 “단순히 보다 넓은 지역에서 혹은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하는 것만이 아니고,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 계획에 배반되는 인간의 판단 기준, 가치관, 관심의 초점, 사상의 동향, 사상의 원천, 생활 양식 등에 복음의 힘으로 영향을 미쳐 그것들을 역전시키고 바로잡는 데 있다”4)라고 하면서 복음과 개인적 사회적 생활 사이에 지속적으로 있는 상호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완전한 복음 선교라고 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사회 문제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현대 세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의, 해방, 개발과 평화”를 추구하는 활동도 복음 선교에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5)

한국 교회에서는 복음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 교회를 대표한 구성원들이 함께 참여하여 민족 복음화를 목표로 내놓은 한국 교회의 공식 문헌인 사목회의 12주제의 의안 가운데 ‘선교’ 의안은 선교 300년대를 지향하는 한국 교회의 사목과 선교 방향에 길잡이로 다른 의안들과 함께 1984년에 확정 반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그 의안들에 대한 공적인 평가 작업을 내려 중요한 내용과 제안을 아직 수용하지 못한 채 지금까지 방치하다시피한 현실이다6). ‘선교’ 의안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1장은 ‘교회가 제시하는 선교 이념’, 제2장은 ‘어제의 한국 교회의 선교’, 제3장은 ‘오늘의 한국’, 제4장은 ‘선교 대책’을 다루면서 ‘제안 사항’을 첨부하고 있다. 사실 ‘선교’ 의안에서 선교의 토착화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인 선교 개념과 선교 내용의 이해는 교회의 공식 가르침인 ‘선교 교령’과 ‘현대의 복음 선교’의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한국 교회의 복음 선교 사명 수행을 위한 대책으로 ‘신자 개인’, ‘본당’ 그리고 ‘교구 또는 전국’의 3가지 관점에서 논하고 있는데 과연 교회가 이 제안을 얼마나 수렴했는지 궁금하다.

이러한 현실과 앞으로 다가올 2천년대를 바라보면서 복음 선교에 대한 우리 한국 교회 나름대로의 이해가 필요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이 땅에 뿌리내릴 복음 선교의 토착화 작업이 실현되어야 하리라 여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먼저 한국 민족의 상황과 어제의 한국 교회가 어떻게 복음 선교를 해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한국 민족의 요청 사항에 교회가 어떻게 대응해 왔는지 파악해 보아야 우리의 현주소를 알 수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한국 교회 복음 선교의 토착화 대책을 논하려는데 여기서는 토착화의 의미, 복음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 그리고 한국 교회 복음 선교의 토착화 대책과 전망 등 3가지가 포함된다. 그리고는 끝을 맺으려 한다.



2. 한국 민족의 상황과 한국 교회의 복음 선교



1) 한국 민족이 바라는 것

한국 교회가 바라고 있는 토착화 작업은 한국의 역사, 현실, 경험 등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구체적인 지역 속에서 시대의 징표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간섭의 뜻을 신학적으로 정립하는 일이므로 한국의 역사와 현실에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국에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복음적인 시각에서 파악하려고 한다. 이렇게 할 때 복음 선포의 새 지평이 밝혀지리라 여긴다. 한국 민족이 요구하는 것과 한국 교회가 실천해 온 것을 비교해 본다면 자연히 괴리감도 드러날 것이다. 그런 괴리감을 없애고 이 민족을 위한 복음을 새롭게 선포하려 할 때는 바로 복음적 새 이해를 이식시키는 의미의 토착화가 이루어지리라 여긴다.



(1) 통일과 정치의 민주화

한반도 분단 이후 우리 민족은 통일을 열망해 왔고 남북의 역대 정권들은 통일을 민족적 지상 과제로 표방해 왔다. 그러나 북한의 상황은 차치하고 남한 국민이 지니고 있는 정부의 통일 정책에 대한 불신은 그동안 왜곡된 반공 교육과 정권 유지를 위한 북방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단시일 내에 청산될 수 없는 현실이다. 1988년 정부의 7.7 선언과 더불어 남북 관계의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리라는 국민의 기대가 오히려 더욱 강화된 정부의 반공 정책으로 사라졌으나 국가보안법에 의한 탄압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일부 지식인, 학생, 종교인들은 통일을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7) 국민의 다양한 의견과 욕구를 제대로 수용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정부는 이를 좌경이니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파괴한다느니 하는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여론 조작과 공권력 행사를 예사로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정계에는 군부 독재 이후 군 출신이 상당수에 이르는데, 이것을 긍정적으로 보면 강력한 통치권의 행사로 도로 건설, 기업 육성, 녹지대 형성 및 보호, 자유 방임으로 인한 사회 탈선 예방 등의 업적을 남기기도 했지만, 이제 국민은 그들이 본연의 직무에 충실히 머물러 있기를 바라고 있다. 경직된 상하 관계, 명령과 복종의 일방적인 전달 체계에 익숙한 이들에게 대화와 설득과 의견 수렴이라는 절차를 요구하는 것 차체가 무리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절차나 방법의 문제보다 더욱 중대한 것은 그들의 지배 이념이 반공, 친미, 자본주의 명목적 자유 민주주의, 안보 제일주의 등에 치우쳐 이런 가치관에 위배되는 말과 행동을 한 사람들을 반대자로 몰아 초법적인 폭력을 동원하여 민주 세력의 활동을 철저히 봉쇄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국민의 지지가 약했으므로 권력의 동의를 공개적인 정당한 방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의식 조작을 통한 부당한 방법을 많이 이용해 왔다. 여기서 한국의 언론이 이러한 이념을 합리화하여 전파함으로써 독재 권력의 장기 집권에 일익을 담당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8) 박정희 정부는 한편으로는 탄압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특혜를 통하여 모든 언론을 독점하였다. 제5공화국이 그 성립 과정에서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엄청난 비리와 부정으로 점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안기부, 경찰 그리고 군대라는 물리적 폭압 기구 외에도 언론이라는 대중의 정신적 폭압 기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6.29 선언 이후 6공화국에 들어와서도 국민들이 염원했던 사회의 광범위한 민주화가 실현되지 못했고, 5공의 유산과 비리가 청산되지 못한 상태에서 민생 문제에 불안과 불편이 가중되고 폭력과 억압의 악순환이 단절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국민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고 정치인은 국민을 두려워하는 주권 재민의 나라, 그래서 최루탄과 화염병이 사라지고 안정 속에 번영이 지속되는 나라일 것이다.



(2) 경제의 민주화

지난 20여 년 동안 우리 나라는 세계에 자랑 할 만한 눈부신 고도의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불균형 성장 정책은 성장의 공정한 사회적 배분을 가져오는 데 실패하였고, 성장과 극심한 빈부 격차에서 온 사회적 불평등의 확대 심화만을 조장하였다. 직접 생산자로서 산업 생산에 공헌해 온 노동자, 성장 정책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소외된 도시 빈민가 농민 등 수많은 민중들은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이 치밀하게 계획해 놓은 성장 정책과 목표 달성을 위한 동원화 과정에 수동적인 도구에 불과하였다.

지금 한국의 농촌과 농민들이 파탄의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80년대 들어와 정부의 반농민적 농업 정책, 예전보다 심화된 저농산 가격 정책, 수입 개방 정책 등으로 인하여 농민은 독점 자본과 외세와의 대립 관계를 그 어느 때보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농민만큼 수탈당하면서 자신의 생존권 요구를 주장할 힘이 약한 집단도 드물다. 농민 정책이 반농민적인 것으로 지속되어 온 이유는 단순히 경제 관료들의 그릇된 경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가 권력의 비민주적 성격과 한국 경제의 비자립적 성격에 있다.9) 따라서 농민들의 생존권 요구는 곧 자립 경제, 반독점, 정치적 민주화로 이어지는 요청 사항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올라가는 전세값조차 감당할 수 없는 자들이 있는 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엄청난 소득을 올리고 사치와 향락 속에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리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부동산 투기와 증권 시장을 비롯한 통화의 기형적인 팽창, 사치 향락의 만연, 천정 부지의 물가고 등으로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져 가고 있다. 따라서 사회가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상대적 빈곤감에 젖어 있는 대분분의 국민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보다 공정하게 나누어 받기를 바라고 있다.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분배 정의의 실현은 현재 우리로서는 양립하기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민족족 과제이다.



(3) 사회와 문화 문제의 해결

우리 국민이 벗어나고 싶어하는 여러 사회적인 문제들은 위에서 언급한 정치 경제 현실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며 상호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도시 산업화의 부산물로 파생된 교통, 환경, 공해, 주택, 범죄 등의 도시 문제와 이와 연관된 농어촌 지역 문제 그리고 최근의 과소비와 교육 문제 등으로 나눌 수 있다.10) 특히 농촌과 도시의 상대적 격차는 이농 탈농에 의한 도시 이주의 농민 수가 불어나고 도시 빈민층의 확산을 조장함으로써 도시에 늘어나는 공해, 범죄, 교통난, 달동네 산동네 재개발 등의 문제 제기와 농촌의 황폐화 등의 부정적인 사회 현상이 야기된 것이다. 농업 부문에서의 이농 현상으로 인한 노동력의 유출로 도시 빈민은 팽창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농민과 노동자 그리고 도시 빈민의 문제가 상호 불가분의 관계에 있게 되고 이런 문제에 대하여 정부는 총체적인 정책을 펴서 대응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문제는 단순히 학교와 학부형의 차원에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부재나 파행성은 바로 그 민족과 국가의 역사 의식의 부재이며 정치 경제의 파행이고, 나아가 국제 관계의 종속성을 의미하기에 지금 우리 교육의 심각성도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 교육의 파행성에는 국가 독점의 이념과 자본주의적 경쟁 이념의 두 가지로 그 원인을 들 수 있다. 국가 독점의 이념은 중앙 집권적이고 하향적인 각종 교육 제도와 장치에서 볼 수 있으며 이것은 교육의 자율성을 압살하고 획일적이며 비민주적인 교육 풍토를 조성해 왔다. 또한 교육 현장엣 두드러진 자본주의적 경쟁 이념은 과열된 입시 경쟁이다. 이것은 교육 전반을 마비시켜 왔으며 다수의 서민 대중을 외면한 채 상류층 혹은 신중산층에 안주하는 교육의 파탄을 일으켜 왔다. 개인적으로 출세 지향적인 가치관의 만연은 교육의 가치관을 전면적으로 붕괴시키는 한편 의식의 이원화와 분단 상황의 고착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11)

이런 상황에서 전국 교직원 노동 조합의 결성으로 인한 정부 당국의 온갖 탄압과 노조 가입 교사들의 무더기 해직은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극명하게 표출해준 사건이다. 정부는 교사들의 처우 개선으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물론 그들이 주장하는 참 교육이 노조 결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또 교원 처우 개선, 입시 위주 교육의 탈피, 교권 확립 등이 노조 방식의 단체 행동으로 해결될 수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참 교육 지표로 삼고 있는 민족 민주 통일 교육과 정부의 교육 의지가 종합되어 이제 더 이상 기능주의 교육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인간 교육, 나아가 민족의 저력을 기르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문화적 차원에서는 서양 문물과 더불어 이 땅에 뿌리내린 서구 문화, 최근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본의 저질 문화, 이와는 반대로 우리의 관심 영역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우리의 전통 문화 등 이러한 현상에 대하여 문제 의식조차 지니지 못할 만큼 우리 대중 문화는 민족의 역사 의식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 밖에도 우리를 괴롭히는 무수한 문제들은 근본적으로 정신 문화의 허약성에서 유래하는 것이므로 이에 대한 정신적 지주가 되어야 할 종교계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2) 어제의 한국 교회의 복음 선교

한국 민족이 바라는 요청 사항에 대하여 한국 교회가 어떻게 응답해 왔는지 논술해 보고자 한다. 우리 교회가 그 요청에 무엇을 주었는지 시대적이고 내용적으로 파악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과거 복음 선교의 양상으로 아래의 여섯 가지 주제로 다루려 한다. 물론 아래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교회 내의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부단한 노력들을 해왔으며 또한 일부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전교회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보다는 한국 교회가 먼저 반성하고 발전해 나가기 위한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것이 더 타당하리라 여긴다. 이렇게 함으로써 어제의 복음 선교의 기본 형태가 비판적인 시각에서 파악되고, 동시에 민족의 요청사항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 그 양상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



(1) 복음 선교의 주체

복음 선교의 주체는 본당에서 우선 본당 신부와 전교 수녀들이었다. 물론 예외적으로 예비자들을 위한 교육에는 평신도가 관여하기도 했으나 극소수 본당에 한하고 또 1960년대 이후에 시작된 교리신학원 출신의 교리 교사를 임명하기도 했으나 차츰 수도자들이 그 자리를 점유하기 시작하였다. 성직자들이 본당의 업무 과다의 이유로 선교 활동의 책임을 수도자들에게 지워줌으로써 2년 간의 교리신학원 과정만을 이수한 수도자들에게 본당의 다양한 선교 요청에 대응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선교 활동의 주역이 성직자, 수도자들에게 위임된 상태에서 한국의 평신도들은 수동적 위치에서 개인적인 수덕 생활에 전념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습관이 굳어져 왔던 것이다.12) 이들 복음 선교의 주체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은 민족의 요청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여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설정했는지 분명하지 않으나 본당에서의 주된 일이 영세 교육에 있었던 만큼 한국 교회가 마련한 교리 교재 즉 교리서의 범위를 벗어난다고 할 수 없겠다.



(2) 시간

복음 선교의 주된 내용이 예비자들이 영세 입교에 국한되었으므로 선교의 시기가 영세자 모으는 기간에 한했고 영세 후에는 선교를 위한 아무런 배려가 없었던 것이다. 영세 준비기에는 주로 이론 교육에 치중하므로 신앙을 생활화해 가는 습관이나 터득에 부실하였다고 볼 수 있다. 영세 후 믿음을 성장시킬 수 있는 재교육의 부재와 본당 신심 단체에로의 흡수가 제대로 되지 않아 적지 않은 냉담자들이 발생하는 결과를 빚었다. 영세 이후에 신앙의 성장에 대한 배려나 노력이 한국 교회에는 거의 없는 실정이어서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등 몇 수도회에서 실시하는 성서 연구반이 재교육의 기회가 되고 있다.



(3) 장소

한국 교회의 복음 선교의 장(장)은 어디까지나 본당 안으로 국한되었다. 지금까지의 본당은 성사 집전의 중심이고 행정 제도로서의 역할만을 해옴으로써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선교 차원에서 본당의 주요 업무는 미사와 교리 교육이었다. 미사 때 주로 무엇을 했느냐고 할 때 말씀의 전례를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강론과 영성체가 주된 요소로 받아들여졌다. 즉 말씀의 전례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말씀 안에 드러나는 하느님을 파악하지 못했고 말씀의 전례를 강론듣는 것으로 여겼다고 하겠다. 주일 미사에 참석하는 것을 신앙 생활의 전부인 양 살아가는 신자들에게 강론이 주는 의미는 대단하였다고 보나 사목자들이 복음과 현실을 얼마나 연결시키면서 강론을 선교의 틀로 여겼는지 의심스럽다. 교리 교육 이외에 본당을 벗어난 지역 사회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매스컴을 통한 종교 교육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따라서 다양한 장소나 상황에서 요청하는 대중의 원의를 채우기에는 한국 교회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70년대 지학순 주교의 구속으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시국 기도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면서 본당이 대사회 정의 구현을 알리는 선교의 장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물론 전국 모든 본당이 동일하지는 않았으나 가톨릭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한 것만은 확실하다.



(4) 대상

복음 선교의 대상은 우선 본당을 찾는 사람들로 국한되었다. 신자들의 계층과 성별에서 살펴볼 때, 한국 교회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고 있는지 알 수 있고 또 이것은 오늘의 한국 교회가 지닌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별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신자가 월등히 많다. 주된 계층으로 도시 본당에는 중산층이 월등히 많은 반면, 농어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가 부유해지면서 가난한 자들에게 대한 선교를 등한히 함으로써 교회는 차츰 중산층 선교에로 나아갔다고 볼 수 있다.13) 선교의 대상이 중산층화하면서 드러나게 되는 현상은 교육면에서도 한국 국민의 현실 문제나 아픔을 언급하기보다 추상적인 교육에로 흘렀다. 70년대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대사회 정의 활동으로 복음 선교의 대상이 지식층과 민중에게도 확대되었고 특히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에게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60년대에 시작된 가톨릭 노동청년회와 가톨릭 농민회를 통하여 노동자와 농민에 대한 선교의 효과도 있었으나 소수의 노동 사제와 농민을 위한 전담 사제의 부족으로 지속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14)



(5) 내용

시대적 관점에서 볼 때 18세기 말인 한국 복음 선교의 초기에 신앙의 선조들은 새로운 하느님과 인간 이해 속에서 유교 체제의 전통적인 신분 질서를 뛰어넘는 만민평등을 실생활에 적응함으로써 평민과 하층 계급의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얻게 되었다.15) 선교사들의 영입으로 한국 교회는 교회의 근본 가르침에 충실하게 되었으나 계속되는 박해 속에서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다. 이것은 박해가 끝난 뒤에도 한국인 스스로의 자생력 결여와 프랑스 선교사들의 교회 수호를 위한 타협적 지도 속에서 일본의 식민 시대에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 하는 교회가 되지 못하였다. 해방이후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여전히 선교사들이 주도해야 했던 한국 교회는 내적 신앙 생활에 더욱 충실하였다. 물론 이미 60년대에 가톨릭 노동청년회의 활동을 통한 사회 참여가 있었으나 크게 드러나지는 못하다가 1971년 원주 교구에서 시작된 부정 부패추방 운동과 1974년 지학순 주교의 구속 사건으로 교회가 사회 문제에 눈을 돌리는 전환기를 갖게 되었다. 이들 사건을 통하여 비로소 교회는 국민이 처해진 현실의 실체를 새롭게 깨닫게 되었고 일반 대중이 불의한 체제 아래 겪는 고통과 부자유에 대해 새로운 관찰을 하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계속된 정의 구현 활동으로 교회는 사회 현실에 대한 자신의 길을 새롭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 복음 200주년 행사와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개최하면서 ‘현실에 침묵하는 교회’, ‘고난의 교회에서 영광의 교회’16)로 지향하고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내용적인 면에서 1970년대 이전까지의 복음 선교는 사회 문제와는 연관 없는 신앙교육이었다. 그것은 교회가 의도하던 주요 신앙 도리를 영세를 준비하는 예비자들에게 일목 요연하게 제시하는 데 목적이 있었고, 한국인으로서 각자가 처해 있는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의식이나 현실 감각과는 무관하였다. 그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 전통 신학에 근거한 정교 분리의 원칙에도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의 구현 운동의 전개 이후 한국 교회는 차츰 민중의 원의와 현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복음 선교에로 향하게 되었다. 민중이 원하던 악순환의 탈피와 민주화 그리고 노동자, 농어민, 도시 빈민 등의 현실 문제와 관련을 맺으면서 교회는 하느님의 구원을 선포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적 변천과 교회 내에서의 정의 구현 활동의 제재(제재)로 교회는 차츰 사회 문제에 침묵을 지키면서 복음 선포의 내용도 신앙 교육에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6) 방법

200주년 사목회의의 ‘선교’ 의안에서 “남의 권유를 받거나 자발적 원의에 의하거나 교회의 문을 두드리는 예비자들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한국 교회는 미숙한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17)고 지금까지의 선교 방법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사실 본당에 국한된 선교였으므로 지역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갖지 못하였고, 방법 역시 제한된 상태였으며 본당 안에서 전례에 국한하면서 사회의 증거가 되지 못하였다. 처음에는 친지나 이웃에 의존하던 선교 방법이 교회의 대 사회 관여 이후 지역 사회에 대한 홍보 수단을 이용한 선교 전략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선교 방법에 대한 큰 대책이 제시되지는 않고 있다.



3. 한국 천주교회 복음 선교의 토착화 대책과 전망



1) 토착화의 의미

최근 토착화라는 ‘Inculturation''의 용어가 교회 공식 문헌에 나타난 것은 ’현대의 교리교육‘에서인데 여기서 “우리는 교리 교육이나 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복음 선교나 그것이 일정한 문화나 여러 문화들 한가운데에 복음의 능력을 옮겨다 주는 것이 사명이라고 할 수 있다”18)고 하여 문화 속에 복음을 확산시켜 문화 그 자체를 그리스도화하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최근 국제 신학위원회에서도 토착화의 필요성을 의식하여 토착화를 “진정한 문화적 가치들이 그리스도교 안에 흡수됨으로써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고, 다른 한편 그리스도교가 인간의 다양한 문화 안에 뿌리내리는 것”19)이라 여겨 ‘신앙과 토착화’를 주제로 다루었다. 여기서 토착화의 과정은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주어진 사회 문화적 상황 안에 파고들려는 교회의 노력으로 보면서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안에 제시한 토착화의 의미를 “본바닥 문화 안에 복음이 육화되는 것이며, 동시에 교회의 생활 안에 이 문화들을 끌어들이는 것”20)이라고 인용하고 있다.

흔히 토착화를 서양적인 것을 배제하거나 동양적인 것을 흡수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즉 전승되어 온 우리의 풍습이나 이론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접목시키는 것이 토착화는 아니다. 어차피 그리스도교는 우리 전통의 입장에서 볼 때 이질적인 것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런 전통이나 문화적인 요소가 끊임없이 복음으로 도전을 받아서 탈바꿈해 나와야 한다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을 지니고 있다. 토착화는 취사 선택하거나 깨트리기도 하고 보존하는 끊임없는 도전을 받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유교적인 요소나 무속적 요소를 받아들이는 것이 토착화는 아니다. 결국 토착화는 어차피 결단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에서의 토착화는 근본적인 문제다. 그 방법은 우리에게 전승되어 온 고유한 사상 연구도 중요하겠지만 더 우선적인 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또는 있었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것을 해결하는 방안도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고 또 미래를 약속하는 체험에 기초를 두어야 할 것이다.21)



2) 복음 선교에 대한 새 이해

‘선교 교령’에는 교회의 선교 사명에 대한 근원을 이렇게 밝히고 있다 : “교회는 그 본성상 선교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니 이것은 성부의 계획을 따라 교회가 성자의 파견과 성신의 파견에서 그 기원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22) 여기서 선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대외 활동에 근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은 지극한 사랑으로 인간과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들을 당신 생명과 영광에 참여하게 하신다. 아버지로부터 파견된 성자와 성신의 파견은 삼위일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관계 안에서 시작되었고 그 관계는 다시 교회 안에서 인간에게 선교로 표현되고 있다. 따라서 교회의 선교 활동은 인간 구원의 별개 사업이 아니라 교회의 정체를 드러내는 사랑의 행위로 나타나고 있다.23)

그러나 선교의 근원을 좀더 깊이 생각한다면 선교는 하느님의 계시와 관련되고 있다. 하느님의 계시는 세상에 대한 관심을 그분이 ‘세상에 내려오신다’(출애 3,8 참고)는 표현 속에 드러내고 있다. 야훼가 이스라엘의 고통을 직접 보고 그 부르짖음을 듣고 손수 내려와 이들을 구하여 새 땅으로 데리고 가려 한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신다. 여기에는 하느님이 자신을 세상에 내보내겠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제 하느님은 당신 본래의 위치를 버리고 삶과 활동과 현존의 터를 인간의 역사와 사회로 옮기겠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다. 여기서는 선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느님의 파견과 인간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 논술하려 한다.



(1) 하느님의 파견(Missio Dei)

① 하느님의 자기 파견의 내용 : 하느님이 세상에 무엇을 선포하셨는가? 그것은 인간의 자유와 해방이다. 에집트의 파라오 밑에서 헤어날 수 없는 압제와 고통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인을 해방시켜 자유와 생명을 주고자 하신 것이다. 여기서 야훼는 파라오를 섬겨서 생기는 죽음 대신에 야훼를 섬김으로써 생기는 자유와 생명을 주는 사건으로 당신을 드러내셨다.24) 그래서 자비와 구원이 필요한 때와 곳이면 언제고 어디서고 어떤 조건이나 인과 관계에 매이지 않고 하느님이 직접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하느님은 이 자유와 해방을 항상 새롭게 체험할 수 있는 길로 시나이에서 십계명을 주셨으나 마지막으로 그 완성의 극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게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노예의 근본적 원인인 인간 속에 나타나는 어두움과 억압으로부터의 결정적인 해방이 나타나고 그 해방을 근거로 한 백성을 교회 안에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인간 각자가 그런 자유와 해방을 체험할 때 또 그것이 계속될 때 교회는 그런 하느님이 다시 드러나고 그리스도가 체험되는 현장이 된다.25)

② 대상 : 야훼의 자기 파견의 대상이 누구인가? 출애굽 사건에서 야훼 하느님은 자유와 생명을 주는 분으로 드러나셨기 때문에 자유와 생명이 완성되어야 할 곳이면 어디서나 당신을 드러내실 분으로 밝혀졌다. 이제 하느님이 주시는 자유와 해방이 일그러질 때 선교의 대상이 되고 하느님의 눈으로 봐서 부족한 곳도 그 범주에 속한다. 이런 모습을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잘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이 에집트에서 나올 때는 모두가 단결하여 파라오의 억압에서 벗어났으며, 이 사건을 하느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가나안에 들어와 정착하여 이웃 민족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잘 살게 되면서 야훼의 정신은 뒷전으로 물러났다. 동시에 사회는 비인간화되기 시작하였다. 이 비인간화의 특징은 삶이 곧 자유에 있다는 야훼로부터 받은 은혜와 인식을 달리 생각하여 자유는 삶이 있은 후에 덧붙이는 것이라고 이해하였던 것이다.26) 그러므로 의식주 문제와 이민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를 삶의 요체로 규정짓고 그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며 자유는 하느님과의 관계로 국한시키고 말았다. 삶과 자유의 관계를 분리시키는 것에 비례하여 인간끼리의 관계도 점점 소원하게 되었다. 따라서 야훼의 정신과 뜻을 찾기보다는 인간 스스로의 힘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간 스스로 다 할 수 있다는 생각과 하느님께 도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성을 상실케 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은 출애굽기 3,8에서 보다 더 깊은 차원으로 인간 세상에 직접 종의 모습을 취하여 강생하였고 결국에는 인간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죽음을 당하였다. 이제 그리스도의 죽음은 성부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하느님의 세상의 주인임을 밝히는 것이다. 여기서 하느님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분명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느님께로 가는 길이 밝혀질 필요가 있다. 이것이 선교다. 이제 선교는 인간을 새롭게 하는 활동이며 길이다. 여기서 인간이 새롭게 된다는 것은 하느님이 함께 하는 은총을 받아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에 종사할 때를 말한다. 하느님이 함께 하시면 그 순간부터 인간의 생각과 논리로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바꾸게 되므로 새 사람이 된다.27)

③ 방법 : 그럼 하느님의 선교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처음에는 야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로 이루어졌다. 야훼가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구했다는 사건을 통하여 하나의 새 백성을 창조하셨다.28) 여기에는 중개자가 없었다. 야훼가 상대로 한 것은 모세가 아니라 백성이었다. 후에 모세가 부각되지만 처음에는 하느님과 백성이 중심 인물로 나온다. 당시와 같은 억압받는 절박한 상황에서는 어떤 중개자도 거치지 않고 오직 하느님이 직접 그 백성의 고난에 관여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가 잘 드러나고 그것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다. 이제 야훼의 선교 혹은 파견이 실현되면서 이스라엘은 새로운 차원의 공동체로서 자유와 해방을 이룬 존재가 되었다.

그럼 자유와 해방에 대한 해석을 어떤 표상 속에서 볼 수 있을까? 이것은 시나이 계약에서 길로 나타난다. 시나이에서 하느님이 내려왔다는 것은 출애 3,7-8의 약속이 출애굽 역사로 일회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것을 제도화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재현될 가능성을 열어 놓은 사건이다.29) 에집트에서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인들은 십계명 준수가 다시 에집트에 갈 필요도 없이 언제고 출애굽의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는 길이라고 이해했다. 따라서 그들은 십계명이 해방과 생명을 얻는 길이며 또한 하느님의 자비를 맛보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제 그 길의 완성이 신약에서 예수님이다. 예수님은 자신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였다(요한 14,6). 구약에서 해방을 맛보는 것이 십계명이라고 한다면, 신약에 와서 해방을 맛보는 길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계명은 형식적인 면을 지닌 하느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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